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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자연에 이름 붙이기, 그리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책 추천

by 눌랑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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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출간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도서임에도 꽤 이슈가 되었었죠. 그만큼 책에 담긴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여전히 남아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직면하게 하는데요. 저자인 룰루 밀러가 작중에서 여러번 언급하고 감사의 말에도 가장 먼저 소개한 책이 바로 《자연에 이름 붙이기》예요.

 

- 이 포스트는 도서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윌북

 

2024년의 #5번째 도서, #1번째 과학 《자연에 이름 붙이기》

 

자연에 이름 붙이기, 어떤 책일까?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2009년에 출간된 책이에요.

 

우리나라에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에 출간되었지만 원서 출간연도로 치면 10년 이상 먼저 나온 책인거죠.

(자연에 이름 붙이기 2009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1년)

 

두 도서의 번역을 같은 분(정지인 번역가님)이 맡으셨는데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독자들이 이 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번역을 많이 요청하셨다고 해요.

 

 

사실 이 두 책은 느낌이 상당히 다른데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유의 을울한 분위기 탓인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책이에요.

 

상처로 가득한 저자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반면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핵심을 관통하는 따끔함이 고루 갖춰진 책이에요.

 

전자는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연륜에서 우러나온 정제되고 통합적인 비전을 나눠받는 느낌이에요.

(실제 저자들의 나이와 무관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핵심적인 서사에서도 차이가 나요.

 

룰루 밀러는 자신이 받은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진실을 모르던 과거의 관점에서 시간 순으로 빌드업 해나가요.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꽤 갈리더라고요. 저는 이 부분 덕에 반전이 강하게 와닿아 좋았지만요.)

 

반면 캐럴 계숙 윤은 처음부터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왜 하는지 밝히고 있죠.

 

 

 

두 저자는 처음 쓰려고 한 이야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예상 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돼요.

 

이 뜻 밖의 진실 앞에서 두 책이 다다른 결론을 보면 서로 상반된다고 느낄 수 있는데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 그대로 물고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이 책에서 물고기는 거의 상징에 가깝다고 느껴졌는데요.

 

우울의 늪에 빠진 저자가 삶의 나침반으로 여긴 불빛, 데이비드 스타 조던 혹은 그에게 씌운 관념(완성된 인간상, 권위, 인간이 만든 체계)을 나타내는 연결고리로 보였어요.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인간이 제 마음에 맞도록 창조한 인위적 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향해 나아가며 자유를 느껴요.

 

 

 

 

 

《자연에 이름붙이기》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럼에도 물고기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물고기는 우리가 실제로 감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생명체로서 살아 숨쉬어요.

 

물고기라는 분류가 분기학적으로 틀렸다고 해도, 현실의 우리는 물고기라는 실재를 감각하고 인지해요.

 

캐럴 계숙 윤이 물고기는 존재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눈에 그래보이니까 진실이 뭐든 유지해야 돼!'하고 우기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천동설 vs 지동설과는 결이 다르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의 초반에 소개되는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요.

 

생물학자들이 사용하는 움벨트라는 단어는 특정한 한 동물의 감각기관으로 인지한(지각되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해요.

 

캐럴 계숙 윤은 움벨트를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과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라고 설명해요.

 

 

 

내가 인간이기에 들을 수 있는 소리, 볼 수 있는 빛, 느낄 수 있는 느낌에 따라 발전된 인지력인거죠.

 

만약 인간의 눈으로 적외선과 자외선을 볼 수 있다면 우리 문명이 지금과 같았을까요?

 

우리가 현미경 없이 육안으로 미생물을 볼 수 있었다면요?

 

개처럼 다양한 냄새를 감지할 수 있었다면 인류사에 벌어진 다양한 사건사고의 양상이 지금과 많이 달랐겠죠.

 

고양이처럼 신체의 몇 배나 높은 곳에 가볍게 오를 수 있었다면 우리의 스포츠와 건축양식도 많이 달라졌을거예요.

 

 

 

 

저는 반려묘가 너무 작은 소리와 촉감에 크게 놀랄 때마다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요.

 

독립개체인 고양이로 살아가기 위해 진화한 특성들, 이를테면 고도로 발달한 청각과 예민한 촉각, 유연한 몸이 우리가 아는 고양이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우리 귀에는 아주 작은 소리가 고양이의 귀에는 너무 크고 위협적인 소음일 수 있는거죠.

 

고양이가 왜 혼자 놀라는지 인간의 시각(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고양이의 움벨트를 가졌다면 인간들이 어쩜 이리 둔한지 놀랄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진화 과학적으로 물고기가 아닌 것을 왜 물고기로 남겨야하는지 그 이유를 캐럴 계숙 윤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고 해요.

 

당초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게 된 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하려던 계획은

 

너무나 유구하고 강한 인간의 본능, 움벨트를 발견한 후 전혀 다르게 바뀌었어요.

 

분류학은 학문이기 이전에 인간의 본능이었고 이것이 본능이 된 까닭은 '생존'에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캐럴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측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 중 생물에 관한 분류를 전혀 하지 못하게 된 사례를 소개하는데요.

 

인공물을 포함한 모든 무생물은 척척 구별하지만 생물을 마주하면 쩔쩔매는 거예요.

 

사고 전에 생물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즐겨본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이들은 명백히 생물로 보이는 살아있는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생물로 만든 음식이지만 무생물에 가까워보이는 것조차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요.

 

시리얼이나 꿀, 수프와 같은 음식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여긴다는 거죠.

 

또 거울로 본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요.

 

오믈렛을 케이크, 빵을 과일이라고 여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벌레를 시리얼, 고양이를 닭(치킨)이라고 인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증상을 '생물에 대한 범주 특수적 결손'이라고 해요.

 

 

 

 

우리에게는 별(항성)에 대한 인식을 공식적으로 담당하는 장소가 없지만, 생명의 분류를 담당하는 장소는 존재해요.

 

우리는 움벨트를 통해 생명을 분류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고 '나'를 구분하고 지각할 수 있어요.

 

울벨트를 갖는다는 건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안다는 것이고 주변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존에 필수적인 움벨트는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너무 강하게 왜곡되었어요.

 

꽃과 나무, 다양한 동물들을 바라보고 분류하던 인류는 이제 실험실의 전문가들에게 모든 생명의 비밀을 맡겨둔 채

 

자신의 움벨트를 사용해 끝없이 소비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집 앞과 매일 걷는 거리에 무성한 생명체는 알아보거나 인식하지 못하면서 가상세계의 포켓몬과 브랜드 로고는 순식간에 알아보고 분류해요.

 

생명 세계에 무감해진 우리가 물고기를 붙잡아야하는 이유는 기후위기와 대멸종의 중심, 우리 자신의 위기에 조차 무감해졌기 때문이에요.

 

생명에 대한 관심은 실험실의 전문가와 국가나 기관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바로 그 생명이기 때문이에요.

 

 

 

 

자연에 이름 붙이기 속 와닿는 문장들

 

움벨트는 개와 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심지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는 그걸 ‘실제’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우리 특유의 감각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 게 바로 움벨트다. 그리고 거기에 답이 있었다.

 

자연의 질서를 인지하는 능력을 잃은 이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잃었고, 그 결과 그 세상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도 잃었다.

 

우리가 자연도감에 의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살아 있는 자연을 이해하고 싶어서만이 아니다. 자기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듣고 즐겼음에도, 우리가 본 게 정말로 무엇인지 과학으로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걸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자료해석관interpretive center)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도 우리가 판단을 과학에 다 맡기고 자신은 불신하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생명도 누군가가 대신 해석해줘야 한다고 느낀다. 정말로 혼자서는 생명을 보거나 듣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맡겨두는 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의 생명에게 눈길도 주지 않게 됐다.

 

 

우리는 모든 것 중 가장 큰 것을, 바로 야생의 자연 자체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우리는 생명과 너무 심하게 단절된 탓에 그에 대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심지어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매년 플로리다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아하함, 하품이 나네. 종들이 멸종하는 속도가 인류가 끼어들기 전에 비해 100배 내지 1000배나 빨라졌다고? 하암, 하아암. 우리는 도무지 그런 일에 신경을 쓸 정도로 각성하지 못하며, 생명의 세계는 우리와 너무 멀어졌고 너무나 무관해 보인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 지경에 와 있음을 깨달은 지금, 어떻게 여기서 탈출해야 할까? 이 책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나의 시도다.

 


당신이 사는 지역의 숲을 거닐 때는 보이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숲해설가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쇼핑몰 안을 돌아다닐 때는 그런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물들의 실제 세계를, 생물 대신 인공 상품들로 가득한 세계, 그것들을 만들 공장과 판매할 상점과 채워둘 집이 있는 세계와 맞바꿨다. 우리가 분주히 쇼핑하고 이 세상 인공물들의 다양성을 불려가는 동안, 이 세상 생물들의 풍부함은 줄어들고 있다.

 

 

 

 

독서를 마치며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에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깊이까지 놓치지 않았어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없었다면 번역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더라고요.

 

《자연에 이름 붙이기》 책 자체로 너무 훌륭하고 좋은 책이에요.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상호 보완적이라 더 좋지만

 

둘 중 한권을 읽어야 한다면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 직관의 유해성을,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인간 직관의 필요성을 매우 잘 담아낸 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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