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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고전문학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장편소설 첫문장

by 눌랑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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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3년의 마지막 달 12월이에요. 연말에는 평소보다 감성적으로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겨울에 많은 분들이 찾는 책 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할 안나 카레니나예요. 너무도 유명한 고전문학의 정수이니만큼 이미 많은 분들이 읽은 장편소설이죠.

 

고전은 어린 시절부터 각종 권장도서로 접하게 되는데,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처음 접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재밌는 점은 그렇게 무관심하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읽고 난 후 왜 고전인지 깨닫는단 거예요. 

 

저에게 처음 그런 충격을 준 고전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었죠. 한동안 그 여운에 빠져서 곱씹던 기억이 나요.

 

 

- 이 포스트는 작품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스타북스

 

2023년의 #66번째 도서, #11번째 소설 「안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니나를 제대로 읽은 것은 부끄럽게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요.

 

안나 카레니나 첫문장

 :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

 

 

첫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죠? 이 묵직한 울림에 많은 곳에 인용된 것 같아요.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된 계기는 정아은 님의 에세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에 언급된 부분이 흥미로워서였어요.

 

이 책의 중반부에 '소설'의 표현기법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가 각각 '보여주기'와 '설명하기'의 대가라는 걸 설명하며 안나 카레니나가 언급되죠.

 

에세이를 다 읽자마자 안나 카레니나를 펼쳤어요.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방대한 분량에 놀랐어요.

 

민음사에서는 무려 3권으로 출간했는데 스타북스에서 한권으로 묶어 출판했더라고요.

 

저야 대부분의 독서를 밀리의 서재로 해결하기에 종이책 권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요.

 

 

 

보여주기의 신, 레프 톨스토이

직전에 소설 표현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을 때엔 톨스토이가 얼마나 '보여주기'를 잘하는지 보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읽을 수록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신기했어요.

 

어찌 이리 과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한 건지 감탄스럽더라고요.

 

안나의 생기 넘치는 매력과 키티의 싱그러운 청춘을 담아낸 외적 묘사도 뛰어나지만,

 

등장인물의 개성이 확고히 담긴 심리묘사가 너무 리얼해서 극이 진행될 수록 놀라움을 자아냈어요.

 

특히 후반부 안나의 불안함을 담아낸 독백과 사건 진행은 톨스토이가 누군가에게 빙의했던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안나 카레니나 속 인상적인 장면

 

안나 카레니나는 분량이 많은 만큼 다양한 장면이 담겨 있어요.

 

여러 등장인물을 두루 비추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는데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어요.

 

#1

안나와 브론스키의 첫만남과 무도회장은 지금도 생생히 그려질 정도로 빠져들어 읽은 장면이에요.

 

이 일순간의 응시 속에서 브론스키는 상대방의 반짝이는 눈과 미소로 살짝 비뚤어진 빨간 입술 사이에 떠돌고 있는 조심스럽고 생기 있는 표정을 보았다. 뭔지 모르지만 풍성한 것이 그녀의 모습 전체에 넘쳐흘러서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눈동자의 빛이나 미소 속에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자기 눈의 광채를 지우려 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그녀의 뜻을 거슬러 그 엷은 미소 속에서 반짝거렸다.

 

 

#2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안나와 브론스키가 머무는 시골 저택에 방문한 장면도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겉으로는 모든 것이 좋아보여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편함이 있죠.

 

그런 애매한 불쾌함을 아주 잘 담아낸 장면이예요.

 

 

 

 

#3

키티의 출산과정과 아기와의 대면을 레빈시점에서 묘사한 부분이 꽤 리얼해서

 

웃기기도 하고 톨스토이 본인의 경험담인가 싶었어요.

 

리자베타 페트로브나는 그 기묘한,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배내옷의 깃에 머리가 반쯤 가려진 붉은 핏덩이를 한 손으로 안아 올려 레빈에게 내밀었다.

“참 귀여운 아기에요!”

리자베타 페트로브나가 말했다. 레빈은 슬픈 마음이 들어 한숨을 쉬었다. 이 ‘귀여운 아기’는 그에게 그저 혐오감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것은 기대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중략>

“여보, 잘 좀 보세요.” 키티는 남편에게 잘 보이도록 아기를 그의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 조그만 늙은이 같은 얼굴의 아기가 갑자기 더욱 쭈글쭈글해지는가 싶더니 재채기를 했다. 레빈은 미소를 띠고 감동의 눈물을 가까스로 참고는,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어둑한 방에서 나왔다. 그가 그 조그만 생명에 대해서 느낀 감정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감정 속에는 무엇 하나 즐거운 것도 기쁜 것도 없었다. 아니, 그 반대로 그것은 새로 일어난 공포였다. 그것은 상처받기 쉬운 새 영역이 생겨났다는 의식이었다.

 

아기와의 대면이 자기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것과 다르단 부분은 소설 결말부에도 언급되어요.

 

고매한 이상 속에 살던 레빈이 현실감각을 찾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묘미예요.

 

 

 

#4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감탄하고 빠져들어 읽은 부분은 바로 안나의 심리묘사예요.

 

#1에서 발췌한 부분과 같이 안나는 본래 외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생기있고 밝은 모습으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었어요.

 

그 덕에 극 초반에 자신의 오빠 부부가 갈등을 해결하도록 조력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지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이어가며 변해가는 안나의 모습은

 

조금씩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러나 어느 순간 확실히 드러나요.

 

사람들 안에서 기운을 끌어내고 사랑을 베풀던 안나는

 

어느새 이 세상에 불행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자기파괴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요.

 

불륜으로 인해 불안정해진 안나의 내면은 죄책감과 불안으로 무너지며

 

결국 스스로를 벌주듯 관계를 뒤틀어버리다 삶의 극단으로 치닫고 말아요.

 

후반부 안나의 독백과 의식흐름 묘사는 정말 소름끼치도록 생생해서

 

괜히 고전문학 중의 명작으로 꼽히는게 아니구나 싶어요.

 

 

또 안나가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세료쥐아와

 

불륜으로 낳은 딸 아니에게 품는 애정의 차이에서도

 

스스로 얼마나 죄의식에 사로잡혀있는지 알 수 있어요.

 

비록 작중에서 남편인 알렉셰이를 혐오하던 안나이지만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세료쥐아는 끔찍이 여기며 애정을 쏟아요.

 

반면 브론스키와의 관계에서 낳은 딸 아니(이름은 안나와 동일)는

 

어떻게 해도 도무지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묘사돼있어요.

 

이는 적법한 관계에서 샘솟은 자연스러운 모성애와

 

부적절한 관계에서 생긴 자기혐오를 나타내는 장치 아닌가 싶어요.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과 시대상

 

#뒷 이야기가 궁금한 등장인물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마음 쓰이는 인물은 안나의 (법적인)남편 알렉셰이 알렉산드로비치예요.

 

이 인물에 대해서는 안나 시점에서 부정적인 묘사가 많고

 

그 외 언급되는 부분이 적지만 짧게 드러난 과거사와 안나의 행적을 보면

 

작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었어요.

 

안나는 알렉셰이의 외모나 일과 명예만 중시하는 모습에 염증을 느꼈지만

 

알렉셰이는 불륜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안나에게 베풀었고

 

브론스키와의 부정한 관계가 이어질 때, 심지어 사생아를 출산한 때에도

 

굉장한 인내심과 자제력을 발휘했어요.

 

그런데 작중 등장인물들이 알렉셰이에게 하는 말과 태도를 보면

 

절로 인간환멸이 들더라고요.

 

이런 부분까지 모두 포함해서 안나 카레니나가 고전명작이 된 것 같아요.

 

 

#사회구조 비판

안나 카레니나는 제정 러시아 시절이라 귀족과 평민, 농노, 하인들이 등장해요.

 

레빈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유일한 등장인물이에요.

 

 

#성별에 따른 차별

불륜은 함께 저질렀지만 사교계에서 비난 받는 것은 안나뿐,

 

브론스키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이전처럼 생활할 수 있었어요.

 

 

이런 부분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하면서도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자연스러운 작품 배경처럼 묘사가 되는 편이에요.

 

이래서 톨스토이가  '설명하기'가 아닌 '보여주기'의 귀재인 것 같아요.

 

 

 

독서를 마치며

 

고전이 고전인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문학작품이었어요.

 

다시 읽는 시기와 마음상태에 따라

 

또 다르게 읽히고 다른 인물에게 이입하게 될 것 같아요.

 

번역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문맥이 매끄러운 편이라 좋았어요.

 

아직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하지 않으셨다면

 

이번 겨울을 함께 할 책으로 강력 추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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